만주여행

용정도문연길2010년8월16일

동반자00 2010. 9. 2. 13:15

 2010년 8월16일 아침 9시20분 호텔을 출발하여 용정으로 이동3.3반일의사릉,윤동주생가및묘소,15만위안 탈취사건 장소,주덕해옛집

명동촌,용정~도문 옛길,두만강 관람

 

두강강을 경계로 북한과 중국의 국경경계를 표시하고 있는 다리

 조선족 여인이 사업차 중국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 가는 모습

 중국과 북한의 두만강위의 다리에 있는 국경선에서

 

 

 

 두만강이 바라보이는 중국측 관망대에서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측을 바라보는 관망대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측이 도문에 만들어 놓은 공원

 

 

 

 

 연길에 있는 일제시대 항일 투사들을 구금한 감옥장소

 

주덕해의 원명은 오기섭, 러시아 연해주 우쓰리스크 부근 산촌에서 태어났다. 원적은 함경북도 회령군 팔을면 복색동이었다. 1931년에 중국 공산당에 입당하고 1937년 소련 동방노동대학에 가서 2년을 학습하고 연안으로 돌아왔고 1943년에는 연안조선혁명군정대학 총무처 처장으로 되었다.

1945년 11월18일에 20여명의 간부들을 거느리고 심양을 떠나 하르빈에 도착한 주넏해는 북만 각지에 조선독립동맹을 건립하고 무장부대를 조직하여 마을을 지켰다. 오래지 않아 제3지대는 3천명의 병력을 가진 부대로 발전하였다. 1948년 3월 이 부대는 동북인민해방군 독립 11사로 재편성하였다. 주덕해가 연변으로 온후 가장 심혈을 기울인 사업은 조선인의 국적문제였다. 주덕해는 제3지대에 있을때 조선인은 중국 국민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 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조선인은 한반도에서

이주해와 이 땅을 개척하고 이 땅을 지켜 싸웠고 이 땅을 건설하고 있다. 공산당은 주덕해의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조선인을 중국 국민과 같이 대우하여 토지를 분여하여 주었고 국민으로 인정 하였다. 1952년 9월3일 연변조선족자치구 인민정부가 성립되었다 주덕해가 정부 주석으로 당선되었다. 이것이 오늘날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전신이다

 

 

윤동주 시인의 묘지앞에서

 

 

 

 윤동주 시인의 묘소에서 바라본 용정시내

 

 

북간도 지역의 3.1운동은 용정에서 3월13일 전개되었다. 그러므로 이지여의 3.1운동을 흔히 3.13운동이라고 한다. 이날 정오 천주교회당의 종소리를 신호로 하여 용정 북쪽에 위치한 서전대야에는 1만명 가량의 한국인이 모여 들었다. 독립축하식은 김영학의 독립선언포고문의 낭독으로 시작되었고 축하회를 마친 군중은

대한독립 이라고 쓴 큰 기를 앞세우고 시위행진에 들어 갔다 그러나 이 계획을 사전에 탐지한 일본은 중국관헌과 교섭하여 중국군대로 하여금 만세운동을 저지 하도록 하였다. 군중의 위세를 꺽을수 없었던 중국군은 발포를 강행하여 18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30여명이 부상한채 해산 되었다.

순사자들의 장례식은 1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으며 조국이 광복되는날 고국에 그 유골을 모셔갈 것을 약속하였다. 현재 용정시 교외에 있는 허청리(합성리)묘소에는 현지 주민들의 노력에 의하여 이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비가 서있다.

 도문을 따라 두만강변의 북한쪽 정경 산위에 김정일을 찬양하는 구호가 있다.

 

 

 중국과 북한을 가로 지르고 흐르는 두만강 강폭이 얼마 되지 않는다 건너편이 북한쪽

 

 

 명동촌 주택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

 

명동촌에 있는 주택의 개집(드럼통)

 

1908년 4월27일 김약연등이 중국 길림성 용정시 명동촌에 세운 근대적 민족교육기관. 1925년 문을 닫을때 까지 1,2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신문화 보급과

민족의식의 고취에 크게 기여 하였다.

 

 

 

 

 

 

 

 

 

 간도 15만원 사건 유적지 1919년 겨울 최봉설과 임국정 등은 청혈광복단을 조직하고 군자금 마련에 헌신하던 중, 회령에서 용정으로 조선은행권 15만원이 우송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를 습격하여 군자금으로 사용하기로 하고 1920년 1월4일 동량어구의 숲속에 매복해 있다가 현금우송마차를 습격하여 15만원의 현금을 확보하였다. 15만원을 탈취한 이들은 국자가 와룡동 의란구를 거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신한촌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기구입을 위해 활동하던중 최봉설을 제외하고

모두 체포되었다. 현재 위치는 동량어구에서 승지촌 사이로 추정되며 기념비는 동량어구 맞은편 언덕위에 설치되어 있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에 있는 교회,1909년 한인마을 명동촌의 지도자이자 시인 윤동주의 외숙인 김약연이 세웠다.

간도지방에서 세워진 조선족 최초의 교회로 1909년 김약연이 8칸 집의 방을 터 예배당으로 사용하였으며 1916년 지금의 명동교회 건물을 세웠다. 한 중 수교 이후

1993년 4월 중국정부에 의해 문화재 보호대상으로 지정되었고 1994년 8월 보수공사가 이루어졌으며 내부에 명동역사전시관이 조성되었다. 기와지붕이 있는

단층한옥 건물이다.  

 

 

 

 

 

 

 

 

 

 

 

명동교회의 모습

 

 

 

 

연길시장의 아침  전경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용정에 있는 마을로, 시인 윤동주 생사가 있다 용정에서 서남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1899년 문병규,남위언,김약연,김하규 등 네 가문이 집단 이주해 형성한 정착촌으로 마을 이름은 '동쪽(한반도)을 밝힌다'라는 뜻이다. 윤동주의 조부 윤하현은 1900년 이곳으로 이사 왔으며

1917년 윤동주가 태어났다

 

 

1994년 발굴된 김약연선생 공적비 성경책위에 비석을 올려 놓은 모습이며 윗부분은 깨져 있다.

 

 

 

 연길시내 중심가 대형상가(일종의 백화점)가 손님을 끌기위한 아침 행사 모습

 

 

 

 

 

                 연길에서 하얼빈 가는 기차표(침대열차)

               연길 아침 수산시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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