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어키

2012년8월11일(토요일)터어키의이스탄불,이즈미르,에페스

동반자00 2012. 8. 23. 15:50

인천공항을 11시50분에 출발한 터어키항공(turkish airlines)이 오전5시(한국시간11시10분) 비행시간 11시간20분만에

이스탄불 아타튀르크공항에 도착하였다. 아타튀르크공항에서 다시 구내선비행기를 타고 8시에 출발하여 이즈미르(IZMIR)DP

이즈미르에 도착하여 셀축에있는  에게해 최대 유적지 에페소(EFES)로 리무진버스로 타고 도착하니 10시30분이었다.여행지에서 첫째날의

관광이 시작되었다.에페스에서 고대로마와 그리스신화의 유적지를 구경하고 쉬린제마을에서 양갈비로 점심을 먹은후 마을구경을 마치고

오후3시 3시간 정도 거리의 내일 일정이 있는 파묵칼레(PAMUKKALE)로 향하였다.현재 표시하는 시각은 터어키 기준이며 우리나라보다 6시간이 늦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공항에 도착 한컷

 

터어키항공 승무원이 사진 찍는것을 보고 친절하게 우리부부를 찍어 주었다

 

 

 

이즈미르공항내에 있는 식당

 

▼이즈미르로 가기 위하여 터어기 국내선을 타고 한장면

▼국내선 기내식 우리나라 국내선은 같은 비행 시간이라도 음료수 한잔 정도인데 푸짐한 한상이다

▼이즈미르공항에 도착하여 청사내에서

 

 

▼지중해연안에서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하는 고대유적지,알렉산더의 휘하장수

리시마쿠스가 BC3세기에 세운,수천년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 있는 도시,로마보다도 더로마답고

,그리스보다 더그리스다운곳 에페스 유적지 관광의 첫 시발점

 

▼에페스 유적지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교인들이 사용하던 암호표시 그리스도교인들이 박해를 당하던

 로마시대에 신도들이 주고 받던 암호로 빵과 물고기 등의 그림이 새겨져 있어 이곳에 그리스도교인들이 있었음을 알수 있다.

▼언덕의 한면을 깍아 지른듯이 놓여 있는 오데이온은 1,400명 가량 수용 가능한 음악당, 당시 이곳에는

 각종 공연이나 귀족들의 회의가 벌어졌으며 시장과 바실리카그리고 콘서트홀이 함께 어우러져

 이상적인 공간 구조를 보여 준다 그러나 계단의 좌석에 있었던 대리석들은 후에 다른 건물을 짓는

 자재로 사용대어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한다.

 

 

 

 

 

▼3세기경에 지은것으로 추정되는 시청사 건물이 있었던곳

 

 

 

 

 

▼헤르메스 상(像)

 헤르메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프스 12신의 하나로 주신 제우스와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축의 증식을 관장하는 부와, 행운의 신, 길손의신, 죽은자를 지하세계로 인도하는 신이어서 그런지 양과 함께 있다.

 지팡이와 샌들이 트레이드 마크로, 지금도 의사를 상징하는 마크이다. 이곳에 히포크라테스의 병원이 있었다고 한다.

▼도미티아누스신전(The Temple of Domition)

 남쪽 매표소를 통해 들어가면 만나는 '위쪽 아고라(upper Agora)' 위편에 있는 도마피아누스 신전은 2층짜리 돌기둥만 남아 있다.

 이곳에는 도마티아누스 황제를 기념하는 가로 50m 세로100m 신전이 세워져 있었다. 폴리비안 왕조의 후손이었다.

 도미티안은 81년 황제가 되었다. 그는 초기에는 좋은 황제였으나 후에는 자신을 주인이자 신이라 부르게 하며 신전을 세우고

 기독교를 탄압했는데 말년에는 근위대장과 눈이 맞은 황후에 의해 살해되고 신전도 파괴되었다. 바로 이시기에 사도요한이

 에페스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탄압을 받았다.

 

 

 

 

▼폴리오 샘

 도미티아누스 신전 앞에 있는 이 샘은 도시의 부자였던 폴리오에 의해 만든것으로 이 우물 앞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었다.

 

 

 

▼멤미우스 기념비(The Monument of Memmius)

 이 기념비는 에페수스에서 로마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하여 B.C 86년 독재자 술라에 의해서 세워졌다.

 당시 에페수스인들은 로마에 반항하여 이지역을 차지하려는 폰투스의 왕인 미트리다테스를 지지했다.

 그러자 미트리다테스는 그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이 지역의 모든 로마시민들에 대한 대학살을 자행했는데

 하루밤에 무려 8만명이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이 기념비는 서기 100년경 이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니케(Nike)의 여신상

 니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승리의 여신으로 로마신화의 빅토리아에 해당한다.

 왼손에는 승리의 상징인 월계관을,오른손에는 종려나무를 들고 있는 이 조각상은 로마시대에 만든것으로

 원래는 헤라클레스 문의 아치를 장식하고 있던 것이다.

 

 

▼크레테스 도로

  셀수스 도서관과 헤라클레스 문 사이에 난 길로 기둥과 대리석으로 꾸며진 거리

 

 

 

 

▼트리이아누스(Traianus)의 우물(샘)

  스콜라티카 목욕탕 앞에 있는 이 분수는 102~104년에 트라야누스 황제를 기리기 위하여 만든 분수이다.

  트라야누스 황제는 로마의 5현제중 하나로 그가 통치하던 시대에 로마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다스렸던 황제였다. 당시에는 정면에 연못이 있었고 그곳에 12m높이로 서 있던 황제 동상의 발목에서 물이 나오도록 만들어 졌는데

  물을 뜨는 사람은 누구나 황제에게 절을 한다는 개념으로 만들어ㅆ다고 한다.

 

 

▼크레테스 거리옆에는 상류층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다니던 길바닥에는 정교한 모자이 그림들이 있다.

 

 

에페스에 남아있는 신전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한 곳.

AD138년에 로마의 5현제중의 하나로 추앙받던 로마황제 하드리아누스 황제에게

바쳐진 신전이다 신전입구에 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남아 있으며 그 기둥위에 얻혀 있는

아치형의 화려한 처마가 감탄을 자아내는 곳이다. 안쪽문에는 두팔을 벌린 메두사가 조각되어 있는데

봉긋한 가슴과 양팔을 넓게 벌린 모습에서 공포의 존재가 아닌 포용의 아름다움이 전해진다

 

 

 

 ▼공중화장실

  크레테스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하드리아누스신전옆에 공중화장실이 있다.

  보존 상태가 좋은 공중화장실은 원래 중앙에 청동으로된 동상들과 함께 대리석 기둥으로 둘러 싸여 있었으며 건물의 절반은

  지붕이 있는 직사각형 건물이었다. 이화장실은 벽을 따라 대리석 변기들이 있고 그아래로는 물이 흐르게 되어있다.

  50여명이 동시에 사용 할수 있도록 칸막이 없이 50여개의 홈이 만들어져 있는데 위쪽에 있는 공중목욕탕에서

  사용한 더운물을 이화장실로 흘려보내 오물이 씻겨 가게 한 수세식 화장실인 셈이다.

  그리고 변기 앞으로는 물이 흘러 그 물을 용변후 뒤처리 하는데 사용했다. 화장실의 사용은 남자에게 국한 되었으며

  그들은 입구에서 이용료를 내는 유료화장실이었는데 물이 처음 흘러들어 오는곳과 나가는 곳에는 요금의 차이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 화장실은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겨울철이나 추운날에는 바닥이 차갑기 때문에 미리 하인을 보내서

  화장실에 걸터 앉게 한후 따뜻해진 다음 주인이 용변을 보았다고 한다.

 

 

 

 

 

 

 ▼ 셀수스 도서관의 이모저모

   로마제국의 아시아 주집정관이었던 셀수스폴레마이아누스를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이퀼라가 지은 웅장한 기념물 .에페스에서가장 훌륭한 건축물중 하나로

   꼽힌다. 모두16개의 거대한 코린트식 기둥들이 완벽하게 그 모습을 유지하고

   2층짜리 건물로 9개의 넓은 계단을 올라 1층에 오르면 세개의 입구가 나오고

   그 양옆의 벽감에 지혜,사색,학문,미덕을 상징하는 정결한 여인들의 동상이 조각되어 있다.

   화재와 지진등으로 상당 부분이 파괴되었다가 1970년경 복구되었다. 발견당시

   장서 1,2000여권이 보관 되어 있었으며 습기를 막기 위해 벽이 두겹으로 만들어져 있다.

 

 

 

 ▼셀수스 도서관 오른쪽에 있는 마제우스와 미트리디테의문

  셀수스 도서관의 오른쪽에는 상업 아고라 or 아래아고라(Lower Agora)로 이어지는 두개의 석문이 있다.

  로마 아우구스트 황제의 노예였던 '마제우스'와'미트리디테'는 황제가 자유인이 되게 해준후 부유한

  시민이 되자 아우구스트와 그의 사위 아그리파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문을 지어 바쳤다.

 

 

 

 ▼셀수스 도서관옆에 있는 3개의 아치형 문으로 되어있는 '마제우스;와'미트리디테'의 문을 통해 들어 가면 상업아고라였던 '아래아고라'가 있다.

  BC 1세기에 세워진 이 아고라는 가로100M 세로100M 크기의 야외 시장이었는데 4세기에 있었던 지진으로 인해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 하였다. 이 도시에서 가장 큰 상업 지역이었던 이곳의 상점들에서는 음식물을 비롯하여 청동과,구리제품,도자기제품,포도주,비단

  보석류,각종 장식품 등을 팔았다고 한다 네로 황제 시대에 건축된 이 아고라는 사방이 회랑으로 둘러 싸여 있었고 상점들은 이곳 회랑에 있었다.

  지금도 두 줄의 둥근 기둥들이 아고라 주위에 세워져 있다.

 

 

 ▼유곽의 흔적으로 표시된 발 보다 큰사람만이 입장할수 있으며 구멍은 돈을 넣는곳

 

 

 

 

 

 ▼오데이온(Odeion)

   언덕의 한면을 깍아지른 듯이 놓여있는 오데이온은 1,400명가량 수용 가능한 음악당

   당시 이곳에서는 각종 공연이나 귀족들의 회의가 벌어졌으며 시장과,바실리카,그리고 콘서트홀이

   함께 어우러져 이상적인 공간구조를 보여준다. 그러나 계단의 좌석에 쓰였던 대리석들은 후에 다른 건물을 짓는

   자재로 사용되어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 쉬린제 마을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주변 경관을 감상 하며 점심을 먹었다

   새끼 양의 갈비를 구운 양갈비와 스프와 셀러드와 후식 후식은 주로 수박이었다

   양고기 특유의 노린내가 났다. 

 

 

 

 

 

 

 

 

 

 ▼점심을 먹고 쉬린제 마을의 이모저모를 구경

 

 

 

 

 

 ▼다음으로 이동중 휴게실에서 화장실을 이용할려고 보니 바닥에 특이하게 화장실 안내 표기가 있어서 한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