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19일 아침5시 기상 7시 식사 8시 여행지로 출발
오늘의 일정
체코 브르노 - 체코 오로모우츠 - 폴란드 아우슈비츠 - 폴란드 크라코프
▼ 오늘 아침 메뉴가 부실하여 컵라면을 하나 곁들였다
▼ 출발 하기전 호텔앞에서
현재의 체코는 보헤미아왕국과 모나비아 왕국이 합쳐서 만들어진 나라인데 보헤미아의 수도가 프라하이고 모라비아의 수도가 오로모우츠
아래가 오로모우츠 구시가로 들가는중이다
독일명은 오르뮈츠(Olmütz)이다. 비스트리체강(江)이 모라바강이 합류하는 곳에 위치하며, 황토와 롬으로 이루어진 기름진 평원에 둘러싸여 있다. 취락의 기원은 10세기로 1640년까지 모라비아의 수도였다.
후스 전쟁 때에는 가톨릭군의 거점으로서, 1758년에는 프로이센왕 프리드리히 2세(대왕)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1850년에는 이곳에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사이의 올로모우츠 협약(協約)이 체결되었다. 농산물의 집산지이면서 상업도시이며, 올로모우츠 치즈와 맥주 등으로 유명하다. 또 제철·기계·약품·식품·목재·의복 등의 공업이 이루어지며, 철도의 요지이기도 하다.
시내에는 12세기 이후의 로마네스크·고딕 양식의 대성당, 13세기의 문화건조물, 벽시계가 붙어 있는 15세기 이래의 시청사 등이 있으며, 1569년에 설립된 대학을 비롯하여 각종 학교와 박물관도 있다. 1947년에는 팔라츠키대학이 설립되고, 유럽에서 가장 견고한 것으로 알려진 요새는 지금 공원이 되어 있다.
▼시청사 원래는 15세기에 건설된 아름다운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었지만
30년전쟁(1618-1648)과 그 와중의 스웨덴의 칩입으로 파괴되었다가
1955년 다시 복원되었다.
▼ 올로모우츠광장의 시계탑
▼성 삼위일체탑 체코 올로모우츠의 미루 광장에 있는 대형 석주(石柱)이다. 18세기 초기 중부 유럽의 바로크 양식의 작품 중에서도 매우 뛰어난 걸작이며 규모가 가장 큰 조각탑이다. 1716~1754년에 만들어졌다. 모라비아의 예술가 온드레이 자흐너(Ondrej Zahner)를 비롯하여 올로모우츠 출신의 예술가와 장인들이 참여하였다.
석주에 장식된 조각들은 주로 종교적인 내용이다. 성서와 관련되었거나 신앙심을 상징한다. 또한 당시 모라비아를 휩쓸었던 흑사병이 끝났음을 감사하려는 뜻도 있다.
석주의 꼭대기에는 대천사 가브리엘과 성모승천이 조각되어 있다. 아래 부분은 3단으로 되어있는데, 성 요셉과 세례자 요한 등의 조각, 12사도와 믿음·희망·사랑을 상징하는 부조들이 새겨져있다. 석주 입구에는 베드로의 반신상이 있다.
이밖에도 30년 전쟁 때 올로모우츠의 감옥에서 순교한 성 요한 사르켄더(John Sarkender)를 비롯한 올로모우츠의 역사와 관계가 있는 많은 성인들이 조각되어 있다. 2000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 올로모우츠 시가지 건물들 모습을 보며 셍바츨라프 대성당으로 가는중
▼셍 바츨라프 대성당
▼여행 일정동안 타고 다니는 버스
▼올로모우츠에서 아우슈비츠 가는중 휴게소에서
▼체코에서 폴란드 국경을 넘는 중이다
▼ 폴란드에 도착 점심을 먹기 위하여 들어간 식당에서 가족들이 생일 파티를 하고 있는 모습
▼ 식사전 나오는 스프
▼ 한국의 감자전과 같은 것을 돌돌 말아서 먹는 폴란드 전통음식 플라츠키
▼오슈비엥침(Oświęcim)이라고도 한다.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50㎞ 지점에 있는 작은 공업도시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그 터는 현재 박물관이 되어 있다. 폴란드명은 오슈비엥침이다. 철도의 교차점으로 화학·피혁·농기구 제조 등이 이루어진다. 13세기 이후 도시로 발전하였으며, 폴란드분할시대인 1772년 오스트리아에 귀속되었다가 1918년 폴란드가 공화국으로 독립하면서 폴란드에 귀속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39년에 독일군에게 점령당하였다.
1940년 4월 27일 유대인 절멸(絶滅)을 위해 광분하였던 H.힘러의 명령 아래 나치스친위대(SS)가 이곳에 첫번째 수용소를 세웠으며, 그해 6월 이 아우슈비츠 1호에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다. 그 뒤 A.히틀러의 명령으로 1941년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어 아우슈비츠 2호와 3호가 세워졌고, 1945년 1월까지 나치스는 이곳에서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로 인해 ‘아우슈비츠’는 나치스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너무나 많은 유태인들이 오르내려서 대리석 계단이 닳았다
▼ 유태인들을 죽인 깨스
▼ 죽은 유태인들의 안경
▼ 유태인 장애인들의 장구
▼ 유태인들의 식기
▼유태인들이 소지한 물건들을 넣고 자기이름을 적은 가방
▼ 어린이들의 옷과 장남감
▼ 유태인들의 신발
▼ 독일군 수용소장을 사형 시킨곳
▼ 깨스실에서 고통을 못이겨 몸부림친 흔적
▼ 저녁식사 스프,메인 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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